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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하아빈
조회 3회 작성일 26-09-15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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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제주 해군기지 건립 후 많은 사람들이 강정마을을 떠났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뉴스앤조이-엄태빈 기자] 싸움이 끝났다고들 한다. 2016년 제주 해군기지가 들어서자 강정마을을 지키던 상당수가 짐을 싸고 자리를 떠났다. 평화를 외치며 함께 굴착기 앞을 막아섰던 이들도, 마을에서 나고 자란 주민들도 하나둘 물러섰다. 총을 든 군인이 지키는 기지가 들어섰는데 어떻게 되돌리겠느냐는 것이었다. 제주 시민사회 안에서도 강정은 이미 진 싸움으로 분류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강정마을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 송강호 박사(개척자들)도 있다. 평화 운동 선교 단체 개척자들을 만든 송 박사는, 1999년 동티모르 내전 현장에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인도네시아 아체의 내전 지역, 지진이 덮친 아이티, 세계 최대 난민촌인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로힝야 캠프)에서 20년 넘게 일했다. 2010년 말 강정마을에 발을 딛은 송 박사는 굴착기 앞을 가로막았고 목에 쇠사슬을 감았다. 2011년에는 공사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긴급체포되기도 했다. 2020년 구럼비 발파 8주년을 맞아 기지 철조망을 끊고 들어가 기도한 일로 군형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이 확정됐다. 제주교도소에서 1년 7개월을 살고 나온 지금도 그는 해군기지를 폐쇄해야 한다고 말한다. 9월 2일 기지 담장을 따라 200여 명이 손을 맞잡았다. 2011년 구럼비로 향하는 마지막 통로가 닫힌 날로부터 15년이 되는 날이었다. 송 박사는 강정마을에 그리스도인들을 초청했다. 그는 "절망의 상황을 희망의 미래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는 송 박사에게 강정마을에 남아 싸우고 있는 이유를 9월 4일 전화로 물었다. 9월 2일 구럼비 바위로 가는 길이 막힌 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제주 해군기지 앞에서 평화를 노래하고 춤을 췄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송강호 박사에게 제주 해군기지가 들어선 강정마을을 왜 지키고 있는지 물었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 9월 2일 구럼비 바위로 가는 길이 막힌 지 15년 되는 날을 기억하며 200명이 모였다 황금성다운로드 . 어느 정도의 규모인가. 2007년 투쟁이 시작된 뒤로 인간띠로 사람이 가장 많이 모였던 때는 2014년 대행진이었다. 그때는 700명이 넘었는데 기지가 완공되기 전이라 마지막 힘을 쏟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나는 감옥에 있어서 밖으로 계속 편지를 쓰고 있었다. 제발 사람들이 해군기지를 다 둘러싸고 건설을 막아 달라고. 내가 갇혀 있으니 더 딱해 보였는지 많은 분이 열심히 준비해 주셨다. 그 뒤로는 100명 넘게 손을 잡고 늘어선 적이 없는데, 이번에 200명이 모인 것이다. - 언제부터 강정마을을 지키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나. 2016년이다. 해군기지가 준공되고 난 다음부터 분위기가 확 돌아섰다. 제주에 있는 활동가와 세계 각지의 평화 운동가들, 시민사회단체조차 이제 강정은 패배한 싸움이라고 본다. 2010년 말부터 평화 활동가들이 강정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운동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발을 디딘 사람들이었다. 해군기지 후보지는 그전에도 있었지만 강정에서 처음으로 활동가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활동가들이 들어오면서 역할도 내용도 계속 변해 왔다. 처음에는 해군기지반대대책위가 비상 체제로 꾸려졌기 때문에 운동 자체는 기지 건설을 막는 형태였다. 그런데 건설이 중단되지 않고 기지가 완공되니 이제 우리는 실패했다고 판단하고 물러선 사람이 많이 생겼다. 나는 그때 옥중에 있어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몰랐다. 이미 진 싸움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사람들의 관심이 。。 떨어졌다. 군인들이 총을 들고 지키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에 주민들이 느낀 위축이 컸던 것 같기도 하다. - 지금 강정에 남은 사람들은 어떤가. 오래 활동하다 보니 여기서 살게 된 사람들이다. 그런데 마을에서 환영받지는 못한다. 부담스럽고 불편한 사람이 돼 버린다. 그렇다고 주민들 편에 서서 기지를 찬성할 수도 없다. 모바일오션파라다이스7 - 그런 분위기에서 무엇이 바뀌었나. 감옥에서 나와 해군기지를 폐쇄하자는 구호를 꺼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뜨악했던 게 기억난다. 일단 폐쇄하자는 말이 사람들 입에서 안 나왔다.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현실적이지 않은 전술은 나중에 오히려 더 큰 고통을 줄 수 있다는 분위기였다. 그때 남아 있던 반대 주민들은 아주 소수였는데, 그분들은 기지가 더 이상 마을을 침범하지 못하게 막아 내자는 쪽이었다. 쫓아내자는 것과는 결이 달랐다. 그때 강정공소 정선녀 회장이 목소리를 높여 주셨다. 제주도민이신데, 해군기지 폐쇄하자로 나가야 한다고 입장을 확 터 주셨다. 그때부터 구호가 달라졌다. "폐쇄시킬 수 있다", "해군을 쫓아내자", "저 해군기지를 우리가 평화의 공간으로 만들자". 그런 새로운 상상력이 일어나면서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공간을 확대해 줬다고 생각한다. 방어적이고 수세적인 자리가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자리가 된 것이다. "우리 안에 평화의 힘이 없다" - 행사 이름이 '손 잡고 장벽 넘어'이다. 넘어야 할 장벽이 기지 담장만은 아닌 것 같은데. 강정마을 안에 있는 우리 자신의 장벽을 생각하자는 게 진짜 취지다. 평화를 외치는 활동가들에게조차도 장벽이 존재한다. 강정 평화 운동은 여기 있는 활동가들이 주도하는 게 아니다. 이 기지는 제주의 문제이자 한국의 문제이고 동아시아와 세계의 문제다. 세계 시민이 모두 여기 연루돼 있고, 참여할 권한과 책임이 있다. 그런데 우리 방식, 우리 플랫폼이 아니면 강정에서 활동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인간띠 하다가 해군과 다투는 사람이 오면 '좀 전투적인 분이 오셨구나' 하고 지켜봤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하시면 매일 투쟁하고 았는 이들을 어렵게 만듭니다" 이런 말이 나온다. - 인간띠잇기는 어떻게 시작됐나. 2011년 12월이다. 문정현 신부와 오래 함께해 온 평화바람이라는 단체가 총회를 하고 있었다. 외람되지만 잠깐 드릴 말씀이 있다며 들어갔다. 인간띠잇기를 하자고 했다 모바일 알라딘 릴게임 . 손에 손을 잡고 막아서서, 우리를 밟고 지나가든지 아니면 못 들어가게 하자고. 문 신부는 그게 되겠나 하시면서도 해 보자고 하셨다. 그때부터 시작됐다. 덤프트럭이나 굴착기 앞에 사람들이 손을 잡고 서 있는 광경, 연약한 존재들이 폭력적인 힘 앞에 서 있는 장면인데 참 인상적이다. 연약한데 힘이 있다는 느낌. 이것이 우리 활동에 중요한 의미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맞기도 하고, 업무방해로 체포도 되고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이러다 다 감옥에 가겠다 싶어서 방식을 바꿨다. 차가 오면 비켜 주고, 지나가면 다시 막아선다. 여기를 막겠다는 의지는 계속 보여 주자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가 떠올린 이미지는 홍해다. 갈라졌다 다시 뭉치는 것이다. 경찰은 어떻게든 처벌하려고 했다. 그런데 업무방해가 되려면 차량이 못 들어가야 하는데 우리가 비켜 주니 성립이 안 됐고, 결국 포기했다. 인간띠잇기는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고 어렵지 않게 참여할 수 있다. 평화 운동의 좋은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송강호 박사는 해군기지 반대 운동이 끝나지 않았다며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희망을 찾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 강정마을에 교회의 관심이 실제로 도움이 되나. 우리 입장에서는 절실하다. 나는 우리 안에 평화의 힘이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강정의 운동은 평화 운동이라기보다 반전 운동이고 반군사기지 운동인 것 같다. 활동가들이 성실하고 진정성 있게 기지 반대 운동을 하고 있다. 평화 운동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반전 운동은 증오심으로도 할 수 있다. 평화의 마음으로 했다면, 같이 싸우던 사람들끼리 다투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충분히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 제주 교회들이 당시 해군기지 유치에 협조했다고. 해군 쪽 그리스도인들이 와서 기지 안에는 교회를 세우지 않고 교인들을 다 지역 교회로 보내겠다고 했다. 교인이 늘어날 거라는 암시였다. 교회에서 그 말로 교인들을 설득했다. 이게 교회가 부흥하는 길이라고. 알라딘게임다운 그런데 군에는 종교 관련 내규가 있어서 부대가 서면 장병들을 위한 교회가 세워지게 돼 있다. 그게 그들의 매뉴얼이다. 감언이설로 속인 것이다. 그렇게 협조를 얻어냈고, 교회에서 기지 찬성에 앞장선 사람이 많았다. 교회들은 성경이 이 상황을 뭐라고 말하는지 설교하는 대신, 교회가 발전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했다. 기지를 반대하는 교인이 있는 교회에 가서도 마을 번영을 위한 설명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교회는 말씀으로 이 현실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데, 자기 책임에 직면하기를 두려워하고 회피한다는 인상을 자주 받았다. - 왜 그렇다고 보나. 제주 곳곳에 흩어진 교회 대부분은 신앙 아래에 애국주의와 반공주의를 깔고 있다. 서북청년단의 정신적 흐름을 잇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서북청년단이 제주 교회의 교권을 제압했다고 본다. 그들이 이전의 교회를 누르고 지도적인 자리를 차지하면서,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로 신앙을 왜곡하는 교회들이 전체적으로 형성됐다. 송강호 박사가 9월 1일 열린 강정 평화 기도회에서 기도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제주 해군기지는 군벌의 바벨탑" - 해군기지는 지어진 목적대로 잘 쓰이고 있나. 부정적으로 본다. 제주는 태풍권이다. 태풍은 강한 동풍을 몰고 오는데 제주 해군기지는 동쪽이 트여 있다. 엄청난 파고가 동쪽에서 밀려든다. 파랑이 높아지면 항구 기능이 크게 떨어진다. 쓸 수 있는 날이 그만큼 줄어든다. 실제로 배가 안전하게 정박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짧아서 함정들이 수시로 이동한다. 전시에는 짧은 기간 집중적으로 쓰기 좋은 기지일 것이다. 예상 가능한 건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이다. 미국 군함이 일정 기간 집중적으로 쓰기에 적절한 곳이라고 본다. 장하나 전 의원(당시 민주통합당)이 확인했듯 이 기지는 미 군함 규격에 맞춰 만들어졌다(10만 톤급 미군 핵항모의 입항 기준에 맞추어 기지 수심과 부두 규격을 설계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라는 정부의 설명과 달리 실제로는 미군기지 역할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 편집자 주). 국회에서 그 얘기가 나올 때 나도 놀랐다 릴게임 다빈치 . 건설한 삼성건설은 왜 미 군함 규격에 맞춰 지었는지 답변하지 못했다. - 그럼 군이 왜 기지를 원했다고 보나. 교회가 세속화되지 않나. 성직자가 본연의 소명보다 명성이나 권력, 교권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이 흔하다. 군인도 세속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본연의 임무보다 사회적 명망과 권력, 자기 집단을 키우는 데 정신이 팔리는 것이다. 일종의 바벨탑이다. 나는 이 해군기지가 군벌의 바벨탑이라고 본다. 기지가 지어지던 무렵 군산복합체의 비리 사건이 계속 터져 나왔다. 국회 청문회에서 군수산업체 비리에 대해 묻자 담당 장교가 너무 많으니 어떤 걸 말하는지 짚어 달라고 하더라.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나왔다. "50개 교회면 된다" 송강호 박사는 평화의 그리스도인들이 강정마을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 그리스도인이 이 운동에 함께해야 하는 이유는. 반전 운동에서 평화 운동으로 넘어가는 일, 그 길을 평화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앞서 말했듯 반전 운동은 증오로도 할 수 있지만 평화 운동은 증오로 해서는 안 된다. 또 하나는, 이제 끝났다 희망이 없다고 절망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희망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 현장을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정이 그런 지.이다. - 강정마을은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자리라고 보나. 뭔가를 눈에 보이게 이뤄 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 그리스도인 선배들이 이 자리를 지켜 왔다. 그분들의 수고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지.이다. 여기에 힘을 보태면, 폭력적인 상황에서 평화를 만드는 일이 무엇인지를 설교가 아니라 현실로 보여 줄 수 있다. 그게 한국 평화 운동에 중요한 자취로 남으리라 본다. - 한국교회에 구체적으로 바라는 게 있다면. 매주 한 교회씩 와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그 에너지를 쏟아붓고 갔으면 좋겠다. 50개 교회, 50개 그리스도인 단체만 마음먹으면 되는 일이다. 우리나라에 교회가 얼마나 많나. 강정개신교대책위에서 올해는 한 달에 한 번, 12개라도 해 보자고 했다. 돌다리 하나 놓는 느낌이다. 내년에는 두 주에 한 번이라도 됐으면 한다. 엄태빈 어들었나.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