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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하아빈
조회 13회 작성일 26-08-25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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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강형원 칼럼니스트 | 《조선왕조실록》 1866년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평양부에 와서 정박한 이양선(異樣船)에서 더욱 미쳐 날뛰면서 포를 쏘고 총을 쏘아대어 우리 쪽 사람들을 살해하였습니다. 그들을 제압하고 이기는 방책으로는 화공 전술보다 더 좋은 것이 없으므로 일제히 불을 질러서 그 불길이 저들의 배에 번져가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쪽 사람들이 뱃머리로 뛰어나와 비로소 목숨을 살려달라고 청하므로 즉시 사로잡아 묶어서 강안으로 데려왔습니다. 이것을 본 군민(軍民)들이 울분을 참지 못해 일제히 모여들어 그들을 때려죽였으며 그 나머지 사람들도 남김없이 죽여버렸습니다." (고종실록 3권, 고종 3년 7월 27일) 평안감사 박규수(朴珪壽)가 조정에 올린 장계(狀啓)의 기록이다. 이 기록에 등장하는 이양선이 바로 미국 국적의 무장 상선 제너럴 셔먼호(General Sherman)다. 필자가 지난 4월 방문한 평양 대동강변에는 거대한 제너럴 셔먼호 격침기념비가 서 있었다. 비석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미제침략선 《셔먼》호 격침기념비' '열렬한 애국자이신 김응우선생을 비롯한 평양인민들이 우리 나라를 침략하였던 미제침략선 《셔먼》호를 천팔백륙십륙년 구월 이일 대동강 한사정여울에서 격침하였다.' 평양 특유의 정치적 표현을 걷어내더라도, 비석이 기념하는 역사적 사건 자체는 분명하다. 1866년 제너럴 셔먼호는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올라왔다가 조선 군민과 충돌했고, 결국 불타 파괴됐다. 160년이 지난 오늘 이 사건을 다시 볼 이유는 역사가 그대로 반복되기 때문이 아니다. 미국과 남북한이 다시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관계의 조건을 누가 결정하는가? 제너럴 셔먼호는 미국인이 소유했지만 영국 메도즈상사가 조선과의 교역을 목적으로 용선했다. 미국인·영국인·청인·말레이계 선원 등이 타고 있었고 총과 대포로 무장했다. 조선 관리들은 허가받지 않은 통상과 외국 선박의 내륙 하천 항행이 허용될 수 없다고 여러 차례 경고했다. 그러나 셔먼호는 계속 상류로 올라갔다. 그 과정에서도 조선 측은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는 전통에 따라 낯선 외국인들에게 여러 차례 음식과 물자를 제공했다. 장마가 끝나 대동강 수위가 낮아지면서 배가 움직이기 어려워지자 상황은 급격히 악화됐다 야마토5게임기 . 셔먼호 측은 조선 관리 이현익을 붙잡아 억류했고, 포격으로 조선 군민의 사상자도 발생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평양 방수성(防水城)에 정박한 이양선(異樣船)이 상선을 약탈하며 총을 쏘아대는 통에 우리 사람 7인(人)이 피살되었고 부상자 또한 5인이나 되었습니다." 이어 조정에 다음과 같은 보고가 올라왔다. "지난번에 멀리 있는 나라 사람들을 너그럽게 대하는 의리로써 좋은 뜻으로 타이르고 식량을 넉넉히 주어 그들을 도왔는데, 도리어 갈수록 더욱더 포악한 짓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중군(中軍)을 잡아다가 억류하였고, 나중에는 또 백성들에게까지 상해를 입혔으니 어떻게 제멋대로 날뛰도록 내버려둘 수 있겠습니까? 군사(軍事)와 관련된 모든 일은 도신(道臣)에게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좋을 대로 처리하게 하여 모두 무찔러 없애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조정은 이를 윤허했다. 말하자면 조선 조정은 '이제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 고 판단한 것이다. 미 해군 역사유산사령부(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역시 사건의 세부 기록은 엇갈리지만, 셔먼호가 조선 측의 반복된 경고에도 상류로 올라갔고, 조선 관리를 인질로 잡았으며, 육지를 향해 발포한 뒤 좌초되어 화공으로 파괴됐다고 정리한다. 160년 전 제너럴 셔먼호가 불탔던 대동강에  2026년 4월 15일 평양 대동강에서 유람선이 운항하고 있다. © 강형원 촬영 이 사건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셔먼호 격침을 지휘한 박규수다. 그는 단순한 쇄국론자가 아니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의 손자였으며, 국제정세의 변화를 일찍 인식한 개화사상가였다. 훗날에는 조선이 미국과 수교해 국제적 고립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따라서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단순히 '미제침략선을 평양 인민들이 격침한 사건'으로만 보는 것도 충분하지 않고, 반대로 '미개한 은둔왕국이 평화로운 통상선을 파괴한 사건'으로 보는 것도 역사적 현실과 거리가 있다. 박규수의 태도를 압축하면 오히려 이런 원칙에 가깝다. '예(禮)로 오면 예로 대하고, 무력(武力)으로 오면 무력으로 막는다 바다이야기게임 예시 .' 셔먼호 사건 5년 뒤인 1871년, 미국은 군함을 이끌고 강화도를 공격했다. 신미양요였다. 그러나 다시 11년 뒤인 1882년, 조선과 미국은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무력 충돌로 시작된 관계는 결국 외교로 돌아왔다. 지금 2026년 한반도에서도 다시 선택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월 19일 올해 안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앞서 그는 이미 시작된 한미연합훈련을 대폭 축소하도록 지시했고, 당초 11일간 예정됐던 을지 자유의 방패(UFS) 훈련은 5일 만에 종료됐다. 진행 중이던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이 미국 대통령의 직접적인 지시에 따라 중도 단축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이례적인 조치였다. 필자는 이것을 트럼프의 역설(Trump Paradox)이라고 보고 싶다.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성은 수십 년간 굳어진 북미관계의 틀을 깨뜨릴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정상 간 합의를 지속 가능한 미국의 정책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우리는 이미 2018년 싱가포르와 2019년 하노이에서 그 한계를 보았다. 역사적인 사진은 남았지만 북핵 문제를 해결할 지속 가능한 제도적 결과는 남지 않았다. 그 사이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능력을 확대했다. 이제 불편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북한의 핵무장을 막겠다는 정책 목표는 결과적으로 달성되지 못했다.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물론 이는 북한을 핵확산금지조약(NPT)이 인정하는 공식적인 핵보유국 으로 인정한다는 뜻과는 전혀 다르다. 그러나 외교는 존재하는 현실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가정하면서 시작할 수 없다. 이제 미국과 대한민국 앞에는 선택이 있다.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를 먼저 모두 포기해야만 외교를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북한을 출발。으로 삼아, 추가 핵생산과 핵능력 고도화를 우선 멈추게 하고, 군사적 긴장을 낮추고, 외교 채널을 복원하며, 북한을 보다 정상적인 국제외교의 장으로 끌어내는 과정을 시작할 것인가. 어느 쪽도 쉽지 않다. 그러나 같은 정책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에도 중요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모바일 오리지널 바다이야기 한국 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을 이재명 대통령 임기 안에 환수한다는 목표를 추진하고 있다. 구체적인 조건과 시기는 한미 간 협의가 필요하지만, 대한민국이 자국 군의 전시 지휘에서 더 큰 책임을 맡으려는 방향은 분명하다. 2026년 4월 15일 평양 대동강변에서 1866년 격침된 제너럴 셔먼호의 잔해에서 수습된 대포 복제품 근처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 강형원 촬영 그렇다면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한국인의 주도권은 더욱 커져야 한다. 지난 4월 대동강변에서 제너럴 셔먼호 격침기념비를 바라보며 가장 흥미롭게 느낀 것은 비석에 새겨진 평양의 역사관과 실제 사건의 복잡성 사이의 거리였다. 그러나 어느 역사관에서 보더라도 한 가지 교훈은 남는다. 1866년 외국에서 온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조선과 관계를 열 수 있다고 생각하며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왔다. 조선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 경고를 무시한 결과는 참혹했다. 2026년 미국도 반대 방향에서 같은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워싱턴이 원하는 모습의 북한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북한과 대화한다고 해서 북한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북한의 핵보유 현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북한 정권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외교는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미국이 현재의 북한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가 아니다. 서울·평양·워싱턴이 지금 존재하는 현실을 인정한 상태에서, 그 현실을 조금씩 바꿀 수 있는 외교를 시작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160년 전 제너럴 셔먼호가 불탔던 대동강은 우리에게 불편하지만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외교가 현실을 외면할 때, 그 대가는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미래를 끌고 갈 수 있다. 강형원씨 제공. 강형원은 코리안 아메리칸 포토저널리스트이자 칼럼니스트로, 로스앤젤레스타임스, AP통신, 로이터통신에서 활동했다. 1993년 코리안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데 이어 1999년 두 번째 퓰리처상을 받았다. 1995년, 1997년, 2026년 북한을 직접 취재했으며, 저서로 『민주화의 현장』, 『사진으로 보는 우리 문화유산』, 『성인의 길을 간 한국은 선비의 나라』가 있다. 현재 '비주얼 히스토리 오브 코리아'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문명에 관한 지식과 시각 자료를 영어권 지식 기반에 편입시키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항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