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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하아빈
조회 5회 작성일 26-09-14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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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죽 성균관대 동아시아미래가치연구소 수석연구원 오전에 연구실을 옮기느라 서가를 정리했다. 무거운 책을 옮기며 몇 번이고 다짐한다. ‘이제부터는 전자책으로 홀가분하게 하리라~.’ 그러다 책 하나를 펼치면 다짐은 무너지고 만다. 여백의 메모, 비뚜름한 줄, 빛바랜 형광펜 자국. 버리자니 나와 부딪던 시간을 내치는 듯하고, 남에게 주자니 손때가 부끄럽다. ■ 「 책은 단순한 물질 이상인 정서의 집 고서엔 타자 생애 겹겹이 담겨 있어 전자책의 편함 모르는 바 아니지만 종이에 마음 가는 지금은 가을 초입 」 이태준 선생은 수필 『책(冊)』에서 ‘책은 단순한 물질 이상’이라고 했다. 의복이나 주택이 체온을 지키는 데 그치지 않듯, 책 역시 정서의 집이기에 마땅히 그러하다는 것이다. 빌린 책으로는 도통 집중할 수 없던 까닭도 여기에 있으려나? 오롯이 내 책이어야 비로소 거침없이 밑줄 긋고, 생각의 흔적을 꾹꾹 새길 수 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다 읽고 나서도 되레 그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라더니, 책에 대한 내 소유욕 또한 유독 그렇다. 흔적을 남겨야만 문장을 흡수하는 듯한 착각이 드니,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나의 소유’여야만 가능했다. 진리와 예술을 가두지 않기 위해 책은 빌려 읽어야 마땅하다는 선생의 서적 윤리를 이해하면서도, 소유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내 고집을 재확인하고 다시 책을 옮긴다. 내가 새긴 흔적이야 별다를 게 없다지만, 타자의 생애가 겹을 이룬 고서를 마주할 때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체리마스터 확률 . 지독히 덥던 여름, 열흘간의 ‘정신적 피서’를 맛보았는데 그 역시 고서들 덕이다. 정년 퇴임을 앞둔 선생님께서 고서 50종 남짓을 성대 고서전문도서관인 존경각에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히신 바 있다. 업무 외에 사서 교육 과정을 이수 중인 나는 서지학 실습과 목록 작업도 겸한 호기를 놓치기가 영 아쉬웠다. 이에 존경각 수석에게 기증본 정리를 맡겨주십사 청을 넣었다. 흔치 않은 배움의 기회를 기꺼이 내어주신 두 분 덕에 귀한 옛 책을 읽고 만져볼 수 있어 더없이 감사한 순간이었다. 표지가 닳아 떨어져 속장을 넘겨야 서명을 겨우 확인할 수 있는 고서들. 붉은 기 흐릿한 장서인, 삭아 바스러지기 직전의 책등을 조심스레 다룬다. 한 장씩 넘기다 보면, 백여 년 전의 흑백사진에 이름 모를 얼굴들, 연대조차 가늠키 힘든 영수증, 책갈피 삼아 끼워 둔 메모엔 지금은 쓰지 않는 맞춤법이 낯설다. 어느 시선집 표지에는 ‘계축년 하지절에 베껴 쓰다’라는 묵서가 단정한데, 그해 여름 시를 옮겨 적었을 누군가의 정성이 역력하다. 필사한 이, 읽은 이, 인장을 찍은 이, 그리고 사진 속 인물들이 모두 이 책을 거쳐 갔나 보다. 이곳엔 과연 몇 사람의 생애가 겹쳐 있는 것일까. 일찍이 간서치(看書癡), 즉 스스로 책만 읽는 바보라 했던 이덕무는 겨울밤 『한서』 한 질을 이불 위에 덮어 추위를 막고 『논어』를 둘러 외풍을 가렸다고 했는데, 책 하나를 스친 사람과 시간의 겹이 이렇게 두텁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모바일 야마토카지노 . 나에게는 오랜 독서 루틴이 있다. 책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내돈내산’을 준수하는데, 끝까지 읽은 후 손때 묻을 즈음에야 저자 사인을 받는 일이다. 물론, 연구서 저자들은 학회나 업무로 마주할 기회가 있으니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유명 작가들을 직접 만날 기회란 쉽지 않아 소설은 논외로 해야겠다. 치열했던 독서의 시간을 증명하고 저자에게 자랑스레 내미는 나만의 작은 의식이랄까. 유치하긴 해도 만족감이나 글에 대한 애정은 남달라지는 게 분명하다. 근래 『수집된 한국』이 출간되자, 저자 김수진 선생이 같은 방을 쓰는 동료라는 이유로 슬쩍 책을 건네주었다. 이건 내 루틴이 아닌데…. 독서 흔적 없이 사인을 받는 게 아쉬웠던 나는 저자에게 부탁했다. 당신의 그 지독했던 노고를 책 첫 장에 마음껏 뽐내달라고 말이다. 부디 ‘겸사’는 사양한다고도 했다. 그러자 “도판 2000만원어치입니다. 2만5000원짜리로 보지 말고 사치품·명품으로 봐주세요”라는 유쾌한 글귀가 돌아온다. 한편으로는, 고단함을 품고 있는 ‘시간’ 그 자체로 보아달라는 요청 같기도 해 뭉클하기도 하다. 고문헌을 비롯한 수많은 화면 속으로 옮겨가는 시절이다. 전자책의 편리함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책이라는 실체를 잊게 되는 순간이 결국 오게 될까 봐 두려울 때가 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나무가 베어져 나가야 정신을 차리겠느냐’는 핀잔 또한 매섭겠으나 종이책의 물성을 사랑하는 이 마음을 놓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닌, 가을 초입이다. 김영죽 성균관대 동아시아미래가치연구소 수석연구원 000000; 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