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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하아빈
조회 3회 작성일 26-09-16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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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한국과 대만에는 없는 것이 많았다. 세계적인 반도체 설계기업도 없었고 미국과 일본을 압도할 첨단 제조기술도 없었다. 인텔과 IBM, 텍사스인스트루먼트가 미국을 이끌었고 NEC와 도시바, 히타치가 일본의 반도체 굴기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두 후발국 앞에는 같은 문제가 놓였다. 미국과 일본이 먼저 차지한 반도체 산업에 어떻게 들어갈 것인가.
한국에서는 이건희가 답을 내놓았다. 우리가 직접 만들자는 것이었다. 공장을 짓고 메모리를 생산해 선발주자를 따라잡는 길이었다. 바다 건너 대만에서는 모리스 창이 정반대의 답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가 굳이 우리 칩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세계의 다른 기업들이 설계한 반도체를 대신 만들어주자는 것이었다.
한 사람은 자기 제품을 가져야 살아남는다고 봤고, 다른 한 사람은 자기 제품을 버려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봤다. 삼성과 TSMC의 차이는 메모리와 파운드리라는 사업영역에서 끝나지 않았다. 공장에 무엇을 축적할 것인지부터 달랐다. 삼성은 자기 제품을 더 잘 만드는 공장을 만들었다. TSMC는 남의 제품을 더 많이 받아들이는 공장을 만들었다. 40년 뒤 이 선택은 한국과 대만에 전혀 다른 반도체 산업을 남겼다.
전쟁 겪은 두 소년, 향한 곳은 달랐다
이건희 日 산업 관찰, 모리스 창은 美로
한 사람은 공장 밖, 한 사람은 공장 안
이건희와 모리스 창에게는 묘하게 닮은 출발。이 있었다. 둘 다 전쟁을 겪었다. 이건희는 6·25전쟁으로 마산과 대구, 부산을 옮겨 다녔고 열두 살에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모리스 창은 1931년 중국 저장성 닝보에서 태어나 중일전쟁과 이어진 혼란 속에서 여러 도시를 떠돌았고 홍콩을 거쳐 결국 미국으로 향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이 태어난 나라보다 훨씬 앞서 있던 산업사회를 젊은 시절 경험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이건희는 일본의 전자제품과 공장, 미국의 소비시장을 바깥에서 바라봤다. 모리스 창은 미국 반도체 산업의 안으로 들어갔다. MIT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한 모리스 창은 실바니아를 거쳐 1958년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 합류했다. 엔지니어로 시작해 반도체 사업을 책임지는 자리까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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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량이 늘어날 때 가격이 어떻게 내려가는지, 수율이 기업의 이익을 어떻게 바꾸는지, 새 공정에 언제 돈을 넣어야 하는지, 고객이 어떤 반도체를 원하는지까지 경험했다.
이건희가 일본과 미국을 돌아다니며 산업을 관찰하는 눈을 키웠다면 모리스 창은 TI에서 반도체 산업 자체를 운영하는 법을 배웠다. 같은 후발국에서 서로 다른 답을 내놓을 두 사람의 경험은 처음부터 달랐다.
이건희 "우리가 만들자", 모리스 창 "왜?"
삼성은 자기 제품에 거대한 자본 투입
대만은 제품 없이 산업 만드는 길 모색
1983년 이건희가 밀어붙인 답은 분명했다. 메모리였다. 미국과 일본이 앞서 있더라도 공장을 짓고 설비를 사고 직접 제품을 만들어 따라잡겠다는 선택이었다. 메모리는 이 전략에 맞았다. 같은 규격의 제품을 대량생산하면서 공정을 개선하고 수율을 높일 수 있었고 다음 세대 제품에 경쟁사보다 빠르게 투자하면 기술격차를 좁힐 여지도 있었다.
대가는 컸다. 공장을 먼저 지어야 했고 장비를 사야 했다. 미세공정이 바뀔 때마다 다시 돈을 넣어야 했으며 가격이 폭락해도 다음 세대 투자를 멈추기 어려웠다. 하지만 한번 만들어진 공장은 다시 경험을 생산했다. 어떤 공정에서 불량이 발생하는지, 장비를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지, 같은 웨이퍼에서 정상 제품을 하나라도 더 뽑아내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가 매일 축적됐다. 삼성은 돈을 공장에 넣었고 공장은 경험을 돌려줬다.
그런데 대만으로 돌아온 모리스 창이 마주한 현실에서는 이 방법부터 문제가 됐다. 대만에는 인텔이 없었다. TI도 없었다. 세계 시장에 자기 반도체를 팔 강력한 브랜드와 고객 기반도 부족했다. 미국에서 배운 반도체 산업을 그대로 복사하려면 먼저 세계적인 제품부터 만들어야 했다. 모리스 창은 여기서 이건희와 반대 방향으로 틀었다. 왜 우리가 반드시 우리 제품을 만들어야 하지?
1987년 TSMC가 만들어졌다. 모리스 창은 쉰여섯 살이었다. 그리고 새 회사에 이상한 원칙 하나를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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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반도체 제품을 만들지 않는다. 당시 기준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인텔은 자기 칩을 설계해 자기 공장에서 만들었고 TI도 그랬다. IBM과 모토로라, 일본 전자기업들도 설계와 제조를 함께 가지고 있었다. 반도체 기업이라면 자기 제품을 갖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TSMC는 그것을 버렸다. 남이 설계한 반도체를 만들어주는 데 집중했다. 삼성이 메모리 설계와 제조를 한 회사 안에서 끌어안으며 수직으로 깊어지고 있을 때 TSMC는 자기 제품을 포기하고 수평으로 넓어지는 길을 택했다. 처음에는 삼성 쪽이 훨씬 전통적인 반도체 기업에 가까워 보였다. 삼성에는 제품이 있었고 기술개발 목표가 있었으며 공장이 있었다. 완성된 메모리를 세계시장에 팔았다. TSMC에는 자기 이름을 붙여 팔 제품조차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빈자리가 자산이 됐다.
모리스 창의 전략 "없는 것'이 무기다"
자기 칩 없어 고객과 경쟁할 이유 없어
삼성의 수직계열화와 반대편 길 선택
TSMC에 자기 제품이 없다는 것은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설계회사가 자신의 핵심 회로를 TSMC에 맡겨도 TSMC가 비슷한 반도체를 만들어 시장에서 경쟁할 이유가 없었다. 반도체 산업에서 기묘한 관계가 만들어졌다. TSMC가 자기 제품을 설계하지 않을수록 더 많은 설계회사가 TSMC를 이용할 수 있었다. 공장이 없는 반도체 기업도 설계에 집중하고 생산을 전문 파운드리에 맡길 수 있었다. 팹리스가 성장할 수 있는 제조 기반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삼성의 공장에서는 반대의 축적이 일어났다. DRAM을 더 작게 만들고 더 많이 생산했다. 불량을 줄이고 수율을 높였으며 한 세대의 제조경험을 다음 세대 DRAM에 다시 넣었다. 삼성은 자기 제품을 반복하면서 깊어졌다. TSMC는 남의 제품을 반복해서 받아들이면서 넓어졌다. 두 회사 모두 공장을 돌렸지만 공장 안에 쌓이는 것은 달랐다.
삼성 공장에는 수율, TSMC에는 고객
하나는 같은 제품 반복하며 더 깊게
하나는 다른 설계 받아내며 더 넓게
시간이 흐르자 이 차이가 더 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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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공장에는 DRAM과 NAND 제조경험이 쌓였다. 같은 종류의 제품을 더 작게, 더 빠르게, 더 많이 만드는 능력이 강해졌고 한국에는 SK하이닉스까지 성장하면서 세계 최대 규모의 메모리 생산기반이 형성됐다.
TSMC 공장에는 전혀 다른 것들이 들어왔다. 프로세서와 통신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GPU, AI 가속기처럼 목적과 구조가 서로 다른 반도체였다. 고객마다 요구하는 성능과 전력, 면적도 달랐다. 그러자 공장만 잘 돌려서는 부족했다. EDA가 제조공정과 연결돼야 했고 검증된 IP가 필요했다. 설계회사가 자신의 회로를 TSMC 공정에 맞춰 구현할 수 있는 규칙과 도구도 필요했다. TSMC는 훗날 OIP(Open Innovation Platform)를 구축하며 이 관계를 하나의 생태계로 묶었다.
삼성은 공정과 수율을 축적했다. TSMC는 공정과 수율에 더해 서로 다른 고객의 설계를 받아 제조로 연결하는 경험을 축적했다. 1980년대에는 사업모델의 작은 차이처럼 보였지만 수십 년 반복되면서 두 나라의 산업구조를 갈라놓기 시작했다.
韓은 메모리 왕국, 대만은 설계의 항구
D램·낸드 축적은 AI 시대 HBM으로
애플·엔비디아·AMD는 TSMC로 집결
한국이 얻은 것은 분명했다. 메모리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DRAM과 NAND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PC가 성장할 때 DRAM이 필요했고 스마트폰과 서버가 커질수록 더 많은 메모리가 필요했다. AI 시대에는 이 축적이 HBM으로 이어졌다. GPU와 AI 가속기의 연산량이 폭증하자 데이터를 얼마나 빨리 공급하느냐가 중요해졌고 여러 DRAM 다이를 수직으로 쌓아 대역폭을 키운 HBM이 AI 컴퓨팅의 핵심 구성요소로 올라왔다. 40년 전 이건희가 선택한 메모리의 계보가 AI 시대까지 이어진 것이다.
대만이 얻은 것은 달랐다. 세계의 설계였다. 애플은 모바일 프로세서를 가져왔고 AMD는 CPU와 GPU를 맡겼으며 엔비디아는 GPU와 AI 가속기를 가져왔다. 공정이 미세해지고 팹 건설비가 폭증할수록 더 많은 설계기업이 자기 공장을 갖지 않는 길을 택했고 그 설계가 TSMC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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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를 따라 EDA와 IP, 설계서비스가 연결됐고 이후 CoWoS와 SoIC 같은 첨단 패키징까지 붙었다.
한국이 세계 최고의 메모리 제품을 만드는 생산기반을 구축했다면 대만은 세계의 설계가 드나드는 거대한 제조 항구를 만들었다.
40년간 멀어진 두 길, AI에서 재회
하나의 패키지 안에 韓·臺 식구로
AI 시대가 오자 묘한 일이 벌어졌다. 40년 동안 서로 다른 방향으로 멀어졌던 두 길이 다시 붙기 시작했다. GPU만으로 AI 컴퓨터를 만들 수 없었고 HBM만으로도 만들 수 없었다. 엔비디아가 GPU를 설계하고 TSMC가 첨단 공정에서 로직 다이를 만든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축적해온 메모리 기술에서 HBM이 나오고 로직과 HBM은 첨단 패키징 안에서 연결된다.
1980년대 이건희와 모리스 창이 서로 다른 답을 내놓았던 생산체계가 2020년대 하나의 AI 가속기 안에서 물리적으로 다시 만난 것이다. 여기서 두 선택의 결과도 동시에 드러났다. 한국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생산능력이 있었고 대만에는 세계의 첨단 로직 설계가 통과하는 제조 생태계가 있었다. 둘 다 성공했다. 그러나 성공하고 남은 빈칸은 서로 달랐다.
메모리는 남았지만 설계층은 얇았다
대만은 세계 로직 안고 생태계 확장
이건희의 성공 뒤 새로운 숙제 등장
한국에는 거대한 공장이 남았다. DRAM과 NAND, HBM을 생산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능력도 남았다. 하지만 메모리를 잘 만드는 것과 컴퓨터 전체를 설계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었다. GPU와 AI 가속기의 연산구조를 누가 설계할 것인가, 메모리를 어떤 인터커넥트로 연결할 것인가, 로직과 HBM을 어떤 패키지 안에서 결합할 것인가, 그 위에서 어떤 소프트웨어가 돌아가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별도로 남았다. 이 영역에서는 미국 기업들의 영향력이 컸다.
대만도 CPU와 GPU 아키텍처 자체를 모두 가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차이가 있었다. 남의 것을 받아들이기로 한 1987년의 선택이 세계의 설계를 대만 제조망 안으로 끌어들이는 구조로 성장해 있었다. 한국은 자기 메모리를 세계 최고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 성공 때문에 오히려 다음 문제가 더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세계 최고 메모리를 가졌다면 그 위에 어떤 컴퓨터를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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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건희가 만들려고 했던 삼성 역시 반도체 회사 하나에서 멈출 생각은 없었다.
반도체 1등만으로 '삼성은 1등' 아니었다
美 매장 구석에 밀린 삼성 제품 직접 목격
1993년 프랑크푸르트서 두 번째 승부수
1987년 이병철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마흔다섯 살의 이건희가 삼성그룹 회장에 올랐다. 반도체에서는 자신이 선택했던 길이 조금씩 결과를 내기 시작하고 있었지만 삼성 전체를 세계시장에 놓으면 상황은 달랐다.
1990년대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전자제품 매장, 이건희가 직접 바라본 삼성 제품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았다. 세계적인 브랜드의 제품들이 전면에 놓여 있는 동안 삼성 제품은 매장 한쪽에 밀려 있었다. 반도체 공장에서는 선두를 쫓고 있었지만 소비자의 눈앞에서 삼성은 여전히 후발주자였다.
이건희가 다시 문제를 정의했다. 이번에는 공장 하나를 더 짓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제품을 바꿔야 했고 품질을 바꿔야 했다. 디자인을 바꾸고 사람과 조직, 삼성이라는 이름이 세계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방식까지 바꿔야 했다.
1974년에는 자신의 돈을 반도체에 걸었다. 1983년에는 삼성의 자본을 메모리에 걸었다. 그리고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삼성 전체를 걸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파운드리(Foundry): 다른 기업이 설계한 반도체를 위탁받아 생산하는 사업. TSMC가 대표적인 순수 파운드리 기업이다.
☞팹리스(Fabless): 자체 반도체 생산공장 없이 칩 설계와 개발에 집중하는 기업. 엔비디아와 AMD 등이 대표적이다.
☞수율(Yield): 생산된 반도체 가운데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제품의 비율. 수율이 높을수록 같은 설비에서 더 많은 정상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HBM(High Bandwidth Memory):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대역폭을 높인 고성능 메모리. AI 가속기와 GPU 등에 활용된다.
☞EDA(Electronic Design Automation): 반도체 회로의 설계·검증·배치 등을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도구. 미세공정이 복잡해질수록 중요성이 커진다.
☞첨단 패키징(Advanced Packaging): 서로 다른 반도체를 하나의 패키지 안에서 고속으로 연결하는 기술. GPU와 HBM 등을 결합하는 데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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