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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하아빈
조회 7회 작성일 26-09-27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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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의 무대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빌라 건물 한 채를 깔끔하게 축소해 무대 위에 올려놓은 듯하다. 옥상 밭 고추를 ‘약탈’해 이웃을 사지로 내몬 한 아줌마의 횡포에, 빌라에 사는 청년과 전문 시위꾼들이 고추 인형 옷을 입고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대학로극장 쿼드·이강물
“사람한테는 중요한 게 있다고. 아무리 그게 고추라도 그 사람한테는 살아가는 희망이 될 수도 있는 거라고!”
평범한 이웃들이 살아가는 오래된 빌라, 301호 청년 ‘현태’(장석환)가 “고추 때문에 사람이 죽냐” “왜 네 화풀이를 남에게 하느냐”고 타박하는 엄마에게 대꾸한다. “악마가 딴 데 있는 게 아니라고. 자기만 알고, 못사는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고 무시하고. 그래서 사람 돌아버리게 만드는 그게 악마라고!”
201호 아줌마 ‘현자’(고수희·멱살 쥔 여성)는 "진심 어린 사과를 하라"는 301호 청년 ‘현태’(장석환·멱살 잡힌 남성)의 멱살을 쥐며 "제 년이 약해 빠져서 쓰러진 걸 왜 나더러 사과하라느냐"고 호통 친다. 서울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10월 4일까지 공연하는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작 장우재, 연출 김광보) 공연 사진. ⓒ대학로극장 쿼드·이강물
빌라 옥상 밭 고추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니 정말일까. 서울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공연 중인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장우재 작, 김광보 연출) 무대 위에선 평범한 일상 속 별것 아닌 사건의 연속이 쫀쫀한 긴장감의 동네 활극, ‘웃픈’ 블랙 코미디가 된다. 잘되면 내 덕에 못 되면 남 탓, 보잘것없는 내 이익을 죽어라 붙드느라 어떻게든 남을 깎아내리는 인간 군상이 많이 본 듯한 모습이라 깔깔거리며 웃다 가슴 한편이 찌릿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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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시작은 어디나 있는 목소리 크고 기 센 201호 아줌마 ‘현자’(고수희)였다. 빌라 재건축에 반대하는 304호 ‘광자’(문경희)가 못마땅했던 그는 못살게 굴어 이사 가게 할 요량으로, 광자가 가꾸던 옥상 밭 고추를 ‘약탈’하며 “남편도 없이 혼자 사는 년”이라며 인신공격을 한다.
지병이 있던 광자가 충격을 받고 쓰러진 걸 알게 된 배우 지망생 ‘현태’는 “진심으로 사과하라”며 이웃들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한다. 촬영 현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동안 “왜 그렇게 별나게 구느냐, 네가 좀 참으라”는 말에 쌓여 가던 분노가 이 사소한 부조리에 마침내 격발된 것이다.
빌라 201호 '현자'(고수희·오른쪽)는 재건축에 반대하는 304호 ‘광자’(문경희)를 못 견디게 만들어 내쫓을 요량으로 광자의 옥상 고추밭을 초토화시키고 "남편도 없이 혼자 살며 냄새나 피우는 년"이라고 욕을 하며 괴롭힌다. 서울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10월 4일까지 공연하는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작 장우재, 연출 김광보) 공연 사진. ⓒ대학로극장 쿼드·이강물
한번 시작된 사달이 일파만파로 번져 간다. 무직 룸펜인 303호 ‘동교’(송철호)가 현태를 돕고, 나름의 정의감으로 시위 현장이면 안 끼는 데가 없는 전문 시위꾼들이 나타나 지방 고추 축제에서 빌려온 고추 인형 옷까지 입고 나서며 일이 커진다. 좁은 방에서 뻥뻥 힘껏 차대는 축구공처럼, 천방지축 튀기 시작한 사건에 빌라 이웃들의 민낯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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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엔 훤히 뚫려 속이 들여다보이는 각각의 집들, 빨래 건조대와 고추밭이 있는 옥상까지 복닥복닥한 빌라 한 채를 깔끔하게 축소해 옮겨 놓았다. 나이와 성별, 직업과 성격이 다 제각각인 인물들은 그대로 사회의 축소판이다.
IMF 극복하고 선진국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자부하는 현자 아줌마는 세 들어 사는 주제에 냄새나 피우고 공용 창고 정리도 안 하는 주민들이 마음에 안 든다. “열심히 살면 왜 못 살아? 꼭 노력도 안 하는 것들이 남한테 기대 살려고 하는 거지!” 떡고물이라도 떨어질까 그 곁을 맴도는 사람들, 차 빼달라는 이웃에게 인상 쓰며 욕하는 무례한 젊은이, “요즘 것들 약해 빠졌다”며 호통치는 노인에다 중립적인 척 눈치 보는 중년 남자가 얽히고설켜든다.
목소리 크고 기 센 동네 대장 아줌마 '현자'(고수희·가운데) 주변엔 사소한 정보나 편의를 기대하며 비위를 맞추는 동네 사람들이 꼬인다.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작 장우재, 연출 김광보) 공연 사진. ⓒ대학로극장 쿼드·이강물
세상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무대 위 인물들이 티격태격 아등바등 하는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다가도, 이런 게 정말 인간의 ‘바닥’인가 싶어 씁쓸해진다. 돈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양심과 윤리, 쉽게 폭력으로 변질되는 정의로운 외침은 사소한 것 같았던 일상의 사건을 또 하나의 사소한 비극으로 연결 지어간다.
김광보 연출가는 “사람을 옳고 그름으로 나누기보다 선택과 흔들림의 과정을 끝까지 바라보며, 관객 역시 자신의 삶과 타인의 고통을 함께 응시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
우리 연극 거장 5인의 ‘쿼드, 연극의 질문들’ 시리즈 두 번째 작품. 공연은 10월 4일까지, 전석 5만원. 연휴 기간엔 30% 할인 혜택이 있다.
만원. 연휴 기간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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