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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완지섭
조회 12회 작성일 26-09-29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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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 관계자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화약 무기인 ‘황자화통’ 실물을 공개하고 있다. 길이 23.75cm, 구경 1.66cm, 무게 1032g. 개인이 휴대할 수 있는 소형 화기다./임지훈 기자 지난 2023년 11월 전남광주 나주 금성산 9부 능선 암벽. 등산로 조성을 앞두고 지뢰를 탐지하던 군 장병의 이어폰에 ‘삐-’ 소리가 울렸다. “여기 금속 물질이 있습니다!” 국내 무기사(史)를 새롭게 쓸 유물이 발견된 순간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화약 무기가 나주에서 발견됐다. 국가유산청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는 “영산강 유역의 군사 요충지였던 나주 금성산에서 고려 말~조선 초에 만든 ‘황자화통(黃字火筒)’이 발견됐다”며 21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실물을 공개했다. 연구소는 “화약 무기 실물 자료가 매우 드문 고려 말~조선 초 유물이라는 。에서 보물급 유산”이라고 밝혔다. 고려 말~조선 전기 황자화통을 든 군인을 추정 복원한 그림(AI 이미지).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 화통은 화약을 사용해 화살이나 탄알을 쏘아 내보내는 무기로, 당시 주력 무기였던 활보다 사거리, 파괴력을 혁신적으로 높인 소형 화약 무기다. 금성산 정상은 1966년 공군 방공포대가 주둔하면서 일반인 접근이 통제됐던 곳이다. 알라딘꽁머니 연구소는 “등산로를 조성하기 위해 군이 지뢰를 탐지하던 중 9부 능선 바위 아래 흙 속 10㎝ 깊이에서 발견됐다”고 했다. 길이 23.75㎝, 구경 1.66㎝, 무게 1032g으로, 개인이 휴대할 수 있는 소형 화기다. 나주 금성산 9부 능선 황자화통 발견 지.. 바위 아래 흙 속 10cm 깊이에서 발견됐다.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 발견 당시 황자화통.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 글자는 모병(冒柄·손잡이 나무를 끼우는 부분)과 총부리(발사체가 나가는 부분)에 총 28자가 새겨져 있었다. ‘정사십이월일 연 황자화통 중일근십사량 감조녹사안휴보 장인석(丁巳十二月日 鍊 黃字火筒 重一斤十四兩 監造錄事安休甫 匠人石)’으로 판독된다. 즉 ‘정사년 12월에 황자화통을 만들었다. 무게는 1근 14량이다. 감독자는 녹사(錄事) 안휴보(安休甫)이고, 장인은 석(石)이다’라는 뜻이다. 어창선 연구소 학예연구실장은 “제작 시기와 명칭, 무게, 제작 감독자의 관직과 이름, 장인 이름이 모두 새겨진 소형 화기는 국내에서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황자화통 모병(손잡이 나무를 끼우는 부분)에 새겨진 명문.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 황자화통 3D 스캔자료(탁본 효과).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 제작 연도인 ‘정사년’은 문헌 기록과 기존 화약 무기 등을 분석했을 때 고려 말인 1377년 혹은 조선 세종 때인 1437년으로 추정된다 모바일 야마토2게임주소 . 1377년은 고려의 무신이자 무기 개발자였던 최무선의 건의로 화통도감(火桶都監)이 설치된 해로, 국가 차원에서 처음 화약 무기를 생산하기 시작한 해다. 1437년은 화약 무기 개량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시기로, 새로운 형태의 화기가 규격화된 1455년보다는 앞선다. 연구소는 “현재로서는 비교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둘 중 언제인지 확정하기 어렵지만, 어느 쪽이든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화약 무기 중 가장 이른 시기라는 건 분명하다”고 했다. 이상훈 전 육군박물관 부관장은 “제작 연월이 밝혀진 가장 오래된 확실한 총통이고, 나주 금성산이라는 발견 지역이 명확해 우리나라 화기 발달사 연구에 있어 초기 공백을 메워줄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황자화통 구조 도면.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 황자화통 발사 추정도. 약통에 화약을 넣어 다진 뒤 총부리에 화살을 장전하고, 심지에 불을 붙여 화약의 폭발력으로 화살을 밀어내는 방식이다.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 왜 나주 금성산에서 화통이 나왔을까. 어 실장은 “금성산은 남해에서 영산강을 거슬러 올라와 곡창지대를 약탈하던 왜구를 방어하는 지리적 요충지였다”며 “1377년 최무선이 화통도감 설치를 건의한 이유도 왜구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였고, 조선 세종 때인 1437년에도 끊임없이 왜구의 침입이 있었다”고 했다. 연구소는 23일부터 11월 22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황자화통을 특별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