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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완지섭
조회 13회 작성일 26-10-01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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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진주는 축제 도시가 된다. 진주남강유등축제가 3일부터 18일까지 진주성과 남강 일원에서 열리고, 제75회 개천예술제와 코리아 드라마 페스티벌이 9일부터 18일까지 이어진다. 세 행사가 겹치는 9일 이후가 가장 붐빈다. 올해 유등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글로벌 축제로 치르는 첫해다. 유등은 해가 져야 제 빛을 낸다. 낮시간 축제장 안에서만 보내기는 아깝다. 진주성 성벽에는 430여 년 전의 흔적이, 원도심 골목에는 100년 전 학교와 교회가, 비봉산 자락에는 날아간 봉황 이야기가 있다. 걸어서 도는 세 갈래와 차로 가는 한 갈래로 진주를 묶고, 맛볼 음식을 모았다. ▲진주성·남강 코스(걸어서 오후~밤) 남강과 진주성 야경. 진주에 처음 온 사람이라면 이 코스 하나로 충분하다. 출발은 진주성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성을 에워싸자, 성안의 조선군은 남강에 등을 띄워 성 밖과 신호를 주고받고 가족들에게 살아 있음을 알렸다고 전한다. 유등축제의 뿌리가 이 이야기다. 성 안 촉석루는 6·25전쟁 때 불탔고 1960년에 다시 지었다. 누각 아래 강가의 바위가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뛰어든 의암이다. 성 안 국립진주박물관은 임진왜란 전시가 중심이어서 먼저 들러 두면 성과 유등이 달리 보인다. 바로 앞 진주대첩 역사공원은 2024년 9월 문을 열었다. 1차 진주대첩의 승리와 2차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7만 선열을 기리는 곳이다. 해가 지면 강으로 나간다. 유람선 김시민호는 1차 전투를 지휘한 진주목사 김시민의 이름을 땄다. 30분쯤 걸린다. 진주교를 건너면 망경동 강변 카페에서 불 켜진 진주성 야경을 정면으로 볼 수 있다. 강변 산책로길은 진양교에서 진주교, 천수교까지 대숲을 끼고 이어진다. 망진산 꼭대기 봉수대는 일제강.기에 훼손된 것을 1996년 시민들이 돈을 모아 다시 세웠다. 2022년 집중호우에 무너졌다가 지난해 다시 복원됐다. 진주 시내와 남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진주성·남강 코스 약도 ▲근대 원도심 코스(걸어서 반나절) 용의 눈 게임 배영초등학교 구 보관 전경. 붉은 벽돌의 2층 구조다. 진주성 정문인 공북문을 나서면 100년 전 진주가 골목마다 남아 있다. 지도상 거리는 2.5km 안팎이다. 오후에 걷고 시장에서 저녁을 먹은 뒤 남강으로 내려가면 앞 코스와 하루에 이어진다. -배영초등학교 구 본관=공북문에서 걸어서 10분이 채 안 걸린다. 1938년에 지은 붉은 벽돌 2층 교사로, 진주에 남은 가장 오래된 초등학교 건물이다. 1908년 일본인 아이들이 다니던 진주공립심상소학교로 문을 열었고, 광복 뒤 배영국민학교가 됐다. 안에 진주교육역사관이 있다. -진주객사 터=임금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고 사신을 묵게 하던 곳으로, 규모가 전국 객사 가운데 가장 컸던 것으로 파악된다. 일제가 헐고 진주재판소를 지었고, 뒤에 방송국이 들어섰다가 지금은 아파트 단지다. 객사의 남쪽 대문 역할을 하던 봉명루(鳳鳴樓)도 '봉황이 운다'는 이름만 남았다. -진주교회=객사 터에서 몇 분 거리다. 1905년 호주 선교사들이 세웠고, 1909년 선교사의 중재로 백정과 일반 신도가 한자리에 앉아 예배를 봤다. 신분의 벽을 허물려던 자리다. 이 시도는 14년 뒤 형평운동으로 이어진다. -진주상무사=서부경남 17개 고을의 보부상을 관장하던 조선 후기 상업 기관이다. 1936년 대홍수에 떠내려간 건물을 1938년 진주 상인들이 돈을 모아 한옥으로 다시 지었다. 객사는 헐렸지만 상인들의 집은 살아남았다. -중앙시장과 논개시장=상무사가 관장하던 장터의 오늘이다. -진주 남성당 교육관=김장하 선생이 1973년부터 2022년까지 운영한 남성당한약방을 진주시가 고쳐 지난해 12월 열었다. 2층에 걸인·기생 만세운동, 진주소년운동, 형평운동이 전시돼 있다. 근대 원도심 코스 약도(공북문 출발, ①~⑥ 순서) ▲비봉산 봉황 코스(걸어서) 선학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원도심과 남강. 진주향교 전경. 오션파라다이스PC 아래 '진주 이야기'를 발로 따라가는 길이다. 출발은 상봉동 봉알자리다. 날아간 봉황이 돌아와 알을 품으라고 만든 자리로, 돌기둥과 안내판이 있다. 북쪽 비봉산 자락의 의곡사는 원도심에 있는 천년 고찰이다. 절 뒤로 비봉산과 선학산을 잇는 둘레길이 나 있다. 능선을 따라 동쪽으로 가면 옥봉동 진주향교에 닿는다. 향교는 고려 때 의곡사 계곡의 향학당에서 비롯됐다고 전하며 1558년 지금 자리로 옮겼다. 앞쪽에 배우는 공간을, 비탈 위쪽에 제사 공간을 앉힌 배치다. 봉황교를 건너 선학산 전망대에 오르면 코스가 끝난다. 진주성과 원도심, 남강이 한눈에 보인다. 해 질 녘에 올라 유등이 켜지는 것을 내려다봐도 좋다. 진주 의곡사 진주향교 전경 비봉산 봉황 코스 약도 ▲강 건너·외곽 코스(차로) 경남도문화예술회관 앞 남강변 형평운동기념탑. 1996년 시민 성금으로 세운 형평운동기념탑. 2017년 촉석문 앞에서 이곳으로 옮겨졌다. 경남문화예술회관 앞 남강변에 형평운동기념탑이 있다. 1996년 시민 성금으로 진주성 앞에 세웠는데 성 안에 들어갈 수 없었던 백정들을 생각해 탑이 성을 마주 보게 했다. 진주대첩 역사공원을 만들면서 2017년 이곳으로 옮겨졌고, 제자리로 돌려놓자는 목소리가 지금도 이어진다. 철도문화공원은 1923년부터 2012년까지 진주역이 있던 자리다. 1925년 무렵 지은 붉은 벽돌 차량정비고가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남아 있고, 벽에는 6·25전쟁 때의 총탄 자국이 그대로다. 진양호공원은 남강댐으로 생긴 호수를 끼고 있다. 전망대의 노을이 좋아 해 질 녘에 들렀다가 유등 시간에 맞춰 돌아오면 된다. 문산읍의 문산성당은 1905년 본당으로 승격한 진주의 첫 성당이다. 한옥 성당과 서양식 성당이 한 마당에 나란히 서 있고, 여러 드라마가 여기서 찍었다. 강 건너·외곽 코스 약도 ◇먹을거리=비빔밥, 냉면, 그리고 실비집 진주 향토 음식은 축제장보다 바깥 식당가에서 제대로 맛볼 수 있다. 진주비빔밥은 놋그릇에 나물을 담고 육회를 올린다. 선짓국이 함께 나온다 모바일 바다이야기게임사이트 . 진주냉면은 해물 육수에 채 썬 육전을 고명으로 얹는다. 평양냉면·함흥냉면과는 뿌리가 다르다. 술 한 병을 시키면 안주가 계속 따라 나오는 실비집도 진주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원도심에는 중앙시장, 논개시장, 청과상。가, 로데오거리, 중앙지하도상가가 한 구역으로 묶여 있다. 중심인 중앙시장은 주 행사장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다. 논개시장은 토요일 밤에 가 볼 만하다. 10월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 '올빰토요야시장'이 선다. 버스킹과 플리마켓, 거리노래방이 열리고, 진주 수제맥주 양조장과 손잡은 부스도 있다. 축제 기간 토요일인 3일, 10일, 17일에는 유등을 보고 넘어가기 좋다. ※진주 이야기=날아간 봉황을 불러라 망경동 대숲 진주는 봉황의 도시다. '봉(鳳)' 자가 들어간 동네가 유독 많다. 상봉동, 봉곡동, 봉래동, 옥봉동, 봉안동이 비봉산(飛鳳山)의 봉황 전설과 이어진다. 비봉산의 옛 이름은 대봉산(大鳳山)이다. 동서로 뻗은 산줄기가 날개를 편 봉황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이 산의 기운으로 진주에서 인재가 많이 났다. 그러자 누군가 산의 큰 바위를 깨뜨렸고, 봉황이 날아가 버렸다. 그 뒤로 '봉황이 날아간 산', 비봉산이 됐다. 진주 사람들은 봉황을 다시 불러들이려고 상봉동에 '봉알자리'를 만들었다. 봉황이 돌아와 알을 품을 자리라는 뜻이다. 남강 대숲도 같은 이야기에 닿아 있다. 봉황이 대나무 열매를 먹으니 강변에 대를 심었다는 것이다. 촉석루 맞은편에 대숲 일부가 아직 남아 있다. 홍수 때 강물이 넘치는 것을 막는 구실도 했다. 거꾸로 진주의 기운을 견제하기 위해 봉황이 못 돌아오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비봉산 서쪽에 '봉황이 깃드는 못'이라는 뜻의 서봉지(棲鳳池)가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이름을 '가마못'으로 바꿨다고 한다. 가마솥처럼 끓는 못에는 봉황이 내려앉지 않는다는 뜻이다. 못은 메워졌고, 그 자리에 학교와 아파트가 들어섰다. 비봉산은 높이 138m 남짓이어서 어렵지 않게 오른다. 비봉산과 선학산을 잇는 다리 이름은 봉황교다. 진주 근대 역사문화 거。체험길. 제공=김신곤 진주 도심 전경 사들이 세웠고, 1